[세계의 부자] 자산 5조9500억원 보유한 中 주룽제지 창업주 장인 회장 | |||
폐지수집상서 中 최고 여성갑부로 | |||
폐지로 막대한 부를 일군 그를 사람들은 `폐지대왕`이라 부른다. 1957년 8남매 가운데 맏딸로 광둥성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이 문화혁명 와중에 투옥되자 맏딸로서 섬유회사에 들어가 일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중국 남부 지역에 있는 작은 제지공장 회계직으로 일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익힌 사업 감각은 훗날 폐지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이 됐다. 장 회장의 사업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역회사에서 포장종이를 수출해본 장 회장은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홍콩으로 건너가 폐지수집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당시 눈부신 경제성장과 더불어 홍콩 내 종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종이 원료인 펄프 가격이 치솟으면서 종이가격도 날로 상승하는 때였다. 이런 가운데 장 회장은 폐지를 재활용해 품질이 새 종이 못지않은 종이를 만들어 파는 사업 아이템을 주목했다. 이후 장 회장은 폐지를 회수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안면을 익히고 거래를 텄다. 시장의 반응은 예상대로 폭발적이었다. 재활용 종이의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기 때문. 사람들이 너도 나도 폐지를 찾았고 홍콩의 폐지를 장악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폐지업계 거물이 됐다. 하지만 장 회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작은 섬인 홍콩에서 수거되는 폐지만으론 늘어나는 시장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1990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큰 만큼 폐지도 무한정 널려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어 한 마디 할 줄 몰랐던 장 회장이지만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폐지 수출회사를 만들었고 거기서 미국으로 수출된 중국 상품 포장지를 수거해 다시 중국으로 보냈다. 중국에선 이것을 재가공해 질 좋은 포장지로 만들었다. 이 회사는 몇 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큰 폐지 수출업체로 성장했다. 이후 장 회장은 미국에 7개에 달하는 포장공장과 운송회사를 세웠다. 물론 실패도 경험했다. 사업에 대한 욕심이 앞서 제지회사에 서둘러 투자했다가 몇 차례 돈을 날리기도 했다. 장 회장은 실패를 철저히 분석해 1995년 주룽제지를 세우고 중국 광둥성 둥관에 첫 번째 제지공장을 지었다. 연산 20만t 규모 설비를 들여놓고 제지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사업이 성장해 거의 매년 설비를 추가할 정도였다. 주룽제지는 장쑤성 타이창에도 공장을 지었고 충칭과 톈진에도 생산기지를 건설해 현재 생산기지가 둥관 타이창 충칭 톈진 등 4곳으로 늘었다. 주룽제지는 지속적으로 증설에 나서며 세계 최대 제지업체로 발돋움할 태세다. 장 회장은 주룽제지를 2006년 3월 홍콩 증시에 상장하면서 재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베트남 제지공장 지분 60%를 인수해 베트남은 물론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 시장도 점령해 가고 있다. 주룽제지를 상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장 회장은 이제 전 세계 `제지 대왕`을 꿈꾸고 있다. 하찮은 폐지에 뿌렸던 꿈의 씨앗이 착실히 자라 세계 최고 제지기업을 바라보기에 이른 것이다. 장 회장이 폐지 수집에서 시작해 일찍 거부로 성장한 비결은 `신용`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얘기할 때마다 `운(運)`을 말한다. 창업할 때 중국이 개혁ㆍ개방 시기여서 기회가 많았고 미국에 건너간 뒤에도 미국 경제가 오랫동안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더구나 미국은 삼림자원이 풍부하고 제지업이 발달했으며 폐지 회수 시스템도 체계적이어서 폐지 사업을 벌이는 게 크게 유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용과 신뢰였다. 상장 당시 장 회장은 "정직하게 일해서 부자가 됐기 때문에 떳떳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사업하며 신용의 중요성을 배웠다"며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중국회사들도 세계적 표준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소 "정직하게 일해 부자가 됐기 때문에 남들에게 떳떳하다. 경험에 비춰볼 때 투명경영이 부자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적지않은 수의 갑부들이 뇌물수수 내부거래 등 비리에 연루돼 사법처리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중국에서, 이런 신용을 강조한 그의 성공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장 회장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ㆍ국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ㆍ정치자문기구)에서 대표로 몇 년간 참석해 중국 기업인들의 견해와 요구사항을 밝히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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